개인생각

[스크랩] 상사 앞에서 `노`라고 말해봤더니

고동소라 2008. 1. 8. 21:55

며칠 전 상사(사장님이시다!!)와 실무자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안건에 대해 오늘 다시 회의가 열렸다. 집행 시기를 마냥 늦출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오늘은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지어야 했다. 방법은 두 가지. 지난 번 회의 때 상사의 의중을 확인했으므로 그것을 따르겠다고 말씀드리는 것과, 신중한 검토 결과 실무자들의 의견은 이러하니 반영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전자의 방법을 택하면 일신이 편하겠으나 나는 가시밭길인 후자를 택했다. 상사의 의견에 '노'라고 말한 것이다. 단순히 '노'라고 한 것이 아니라 경쟁업체나 유사업체의 상황, 예상되는 문제와 실행 과정에서의 장단점까지 거론하며 상사와 실무자의 안을 비교했다. 그러나 상사는 "그건 절대 아니야"라는 단호한 말로 당신의 안을 주장하며 실무자의 안을 폐기했다. 뒤이어 구구절절한 훈계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게임은 끝났다. 상사, 그것도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사장님이 절대 아니라니 이제 그 안에 맞춰 체제를 정비하고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하면 될 일이다. 나는 상사 앞에서 '노'를 외쳐봤고 상사는 당신의 안을 관철했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해서 내 신상에 불이익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을 걱정해야할 만큼 우리 회사가 꽉 막힌 조직은 아니니까.

 

마음이 홀가분하다. 상사 앞에서 최소한 '찍' 소리는 내보고 죽은 셈이므로. 사실 직장생활 하면서 윗분 말씀에 아무 토도 달지 못하고 "예, 알겠습니다."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속이 썩어문드러는 것이야 일러 무엇하리. 나는 찍 소리를 내봤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부서 직원들이 처음 제시했고 나 자신이 원했던 안을 관철하지 못한 미안함도 슬며시 내려놓는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다른 사람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나만 노라고 한 것'이 아니라 '사장님이 예스라고 할 때 실무자들은 단체로 노라고 한 상황'인데, 사장님 단 한 사람의 예스가 여러 실무자들이 입 모아 외치는 노보다 훨씬 막강한 역학관계 때문이다. 이번 안건이 객관적인 수치로 계량화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와 이미지에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역시 상사는 협상과 설득의 대상이 아님을 새삼 절감하기도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조직의 생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꿈꾼다.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나만은 '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우리는 또한 꿈꾼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나만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재수없는 상황은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1월 2일 올린 글, 상사 앞에서 '노'라고 말할 사람 몇이나 될까 중에서)

 

/몽당연필/

출처 : 졸필난필 잡문신문
글쓴이 : 몽당연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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