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눈물로 주여 옵니다.
사고 후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아 찾아간 곳 다름 아닌 병원 내 작은 교회였다.
교회는 입원 중인 환자들과 가족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며 예배처소였다.
나는 생애 두 번째 예배당에 왔다.
첫 번째 군 복무시절 사역병 집합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도피처는 교회였다.
그 때는 육체가 건강하고 혈기 왕성한 22세 청년시절 이였지만 지금은 건강을
잃고 휠체어에 의지하여 두 번째 찾아온 것이다.
이 병든 맘을 고치려 이제 옵니다. 큰 힘과 바라고 주여 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교회는 같은데 다른 것은 나의 육체의 조건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다른 것은 그 때 마음과 지금의 마음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너무나 달랐다.르다.
처음 간 교회는 육체의 자유는 있었지만 예배드리는 시간이 불안했으며
한 시간이 너무 길고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육체의 자유는 잃었지만 평안함이 마음과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기도를 드리고 계신 그 대열에 함께 하고 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그냥 눈만 감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너무 지루했지만 절반은 긴장된 마음으로 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감고 있는 내 귀에 기도하신 분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옆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 분은 눈물을 흘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쩌면 고치지 못할 질병이 있든지 아니면 가족 중에 누군가 생명이 위독한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서럽게 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내 마음에 일어난 것이다.
그 분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신 모습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뭐라고 할까! 부럽다고 해야 맞을까! 아무튼 긴장된 내 마음에 작은 파도처럼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저분을 부러워하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때 그 분이 흘린 눈물은 병들어 흘린 눈물도 아나요. 가족 중에 누군가
목숨이 위태로워 흘린 눈물도 아니요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감사해 흘린
감격의 눈물이라는 것을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오~ 주여!
저에게도 구속의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주시옵소서. 아멘.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