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교회를 생지옥으로 만든 케냐의 종족 갈등
2008년 01월 08일(화) 06:43 |
김영기 명예기자 pallbearer84@hanmail.net |
대통령선거 부정의혹으로 촉발된 종족 갈등 확산..교회에 사람 가두고 불 질러
▲오딩가 후보 지지자들이 나이로비의 길거리에서 자동차에 불을 지르며 시위구호를 외치고 있다.(출처:nzz.ch)
지난 며칠간, 아프리카 케냐의 여러 도시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폭도로 변해 서로 폭행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대통령 선거 부정의혹에서 촉발된 이번 갈등은 종족 간의 충돌로 이어졌으며 결국 피비린내 나는 학살극으로 번지고 말았다.
서방세계는 비교적 치안 및 정치가 안정돼 있었던 케냐에서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에 대해 크게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이 더욱 커지면서 많은 인명 피해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케냐 난민들을 위한 구호물품을 보내는 동시에 서방 지도자들은 자국 외교관을 통해 정치적 중재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교황 베네딕트 16세를 비롯한 세계의 종교지도자들도 케냐의 현 상황을 우려하면서 사태가 원만히 해결하길 바란다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부정의혹이 종족 간 내전 촉발해
지난해 12월 27일, 케냐 전역에서 실시된 대선에서 전임 대통령인 음와리 키바키가 재선에 성공해 대통령직을 연임하게 됐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었다.
하지만 선거 개표과정을 보면 부정선거였다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개표 중반까지 야당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가 선두였는데, 갑자기 몇몇 지역에서 선거투표함이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이윽고 음와리 키바키가 다시 선두로 치고 올라온 것이다.
결국 최종집계 결과 음와리 키바키가 재선에 성공하자, 오딩가 후보 측은 즉각적으로 성명을 내고 이번 대선을 ‘총체적인 부정선거’라고 평가하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음와리 키바키가 대선 이후 정치적 행보를 강행하려 하자, 그를 권력에서 축출하려는 반정부 세력이 나타나 케냐 수도 나이로비 곳곳에서는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특히 키바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들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 오딩가 지지자들의 분노를 촉발시켰으며 정부에 대항하는 반군 조직이 케냐 곳곳에서 연달아 맹위를 떨쳤다.
나이로비뿐 아니라 케냐의 중부 및 남동부에서도 산발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충돌과 다툼에 각 부족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결국은 케냐 전체 부족 간의 물리적 충돌로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케냐의 국민은 모두 10여개의 부족으로 이뤄져 있어 사회 각 분야에서 그 구성원이 매우 다양하다. 현 대통령인 음와리 키바키는 키쿠유 부족 출신이고, 야당 후보 오딩가는 루오 부족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연유로 키쿠유 부족과 루오 부족 간에는 선거기간 중에도 서로 폭행을 하며 흉기로 상대를 위협하는 일이 번번이 일어났었다.
아프리카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 상태를 누려왔던 케냐는 대통령 선거로 인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으며 그동안 부족 간에 조용히 잠재해 있던 갈등과 분노가 폭발 단계에 이르렀다.
교회에 사람들을 가두고 불을 지르는 대학살 일어나
비극적인 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지난 화요일 케냐 서부 엘도레트 타운 근처에 있는 한 교회에서는 키쿠유 부족 출신의 케냐 민간인 30여 명이 산 채로 불에 타 살해당하는 끔찍한 학살극이 발생했다.
사건을 일으킨 피의자들은 키바키 대통령을 적대시하는 폭도들로 밝혀졌으며, 이들은 대통령과 같은 종족인 키쿠유 부족원들을 교회에 가둔 뒤, 교회 건물에다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교회 안은 삽시간에 생지옥이 돼버렸으며 안에 갇혔던 사람들은 뜨거운 화염 속에 고통스럽게 목숨을 잃었다.
사건 목격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교회 주변에서는 새까맣게 그을린 시체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피해자들은 대부분 힘이 약한 노인이거나 여성 그리고 아동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체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심각히 손상되었으며, 바람이 세게 불면 뜨거운 사막 위에 굴러다니도록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케냐 경찰국의 에릭 키라이더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대해 “케냐 역사상 폭도의 무리들이 신성한 교회를 습격하고 파괴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렇게 잔혹한 행동을 벌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사건의 잔혹함에 머리를 흔들었다.
엘도레트 신문의 한 리포터는 “젊고 건장한 한 무리의 남성들이 교회로 다가오더니 키쿠유 부족 출신의 무고한 사람들을 집단으로 폭행하기 시작했고, 키쿠유 여성과 노인을 보호하려는 소년들이 있었지만 폭도들의 힘에 밀려 이렇다 할 대항을 하지 못했다”면서 “두려움과 살해당할 가능성을 느낀 키쿠유 부족원들은 교회 안으로 피신하자 폭도들은 교회 문을 잠근 뒤 불을 질렀다”고 당시의 비극을 전했다.
교회 안에 갇혀 있던 피해자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문에 몸을 던지는 등 나름대로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어림없었다. 서로 몸을 밀치며 문으로 향해 나가는 도중 뜨거운 불길이 자신의 몸에 옮겨 붙었고 키쿠유 부족원 대부분은 가스 중독과 심한 화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민족간 대량학살 시작 아니냐는 우려 커져
케냐 엘도레트 타운 교회 대학살은 그간 아프리카 각국에서 자행돼 왔던 민족 학살극과 여러모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시 한 번 피의 대량학살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졌던 기독교인을 비롯한 소수민족 대량학살과 2000년에 발생한 우간다 기독교인 집단살해 모두 처음에는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엘도레트 타운 비극은 다른 곳으로 이어져, 케냐 곳곳에서 키바키 대통령의 정부군과 오딩가 후보 측근 및 다른 지역 호족들로 구성된 반군 간의 소규모 내전이 발발했으며, 시민들 사이에서도 정치ㆍ민족 간의 갈등으로 서로를 헐뜯고 상대방을 물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일들이 빈번이 일어나고 있다.
케냐 경찰은 이번 사건과 내전으로 인해 지금까지 사망한 수가 170명, 난민은 7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발표했지만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외국 언론은 사망자가 300명에 육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냐 유력 일간지인 <데일리 네이션>은 최근 사설을 통해 “국가 존립 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놓이고 있으며 국민들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경고하며 하루빨리 사회가 정상화되길 희망했다.
▲케냐 시민들은 앞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려면 패거리를 조직해 칼과 무기 등을 가져야 할 것이다.(출처:c.liberation.fr)
유럽ㆍ미국, 외교적 노선 가동해 조속한 사태 해결 시도
2008년 새해에도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는 반군의 소위 게릴라식 ‘치고 빠지는 기습공격’으로 거리마다 치안 부재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에 대항하는 시민들은 슬럼가나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로 이동해 주민들을 선동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경찰의 대응 능력이 의심 받고 있는 가운데, 나이로비의 길거리는 음산하기만 하다.
한편, 평화롭고 경제적으로도 부흥했던 케냐가 심각한 내전상황으로 바뀔 위기에 놓이자, 이웃 아프리카 국가들과 서방세계는 외교적 노선을 가동해 상황을 진정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케냐와 함께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바 있는 아프리카 서부의 가나는 대통령이 나서서 키바키와 오딩가 사이의 불신을 해소하는데 적잖은 노력을 하는 모습이다. 아프리카연맹의 회장인 존 쿠포르 가나 대통령은 지난 수요일 나이로비 대통령 궁에서 키바키 대통령을 만나 화해를 촉구했다. 아프리카연맹의 소식통에 의하면 쿠포르 가나 대통령은 하루빨리 사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미국도 사태해결에 동참하기로 결정하며 자국 외교관을 나이로비에 급파했다. 워싱턴 백악관은 처음에 키바키 대통령의 연임을 축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성명을 취소하면서 ‘선거 부정행위에 대해서 적지 않은 염려’를 나타냈다.
영국 외교부와 EU 및 다른 국제기구도 케냐 대통령 연임을 축하한다는 성명 대신 선거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예의주시하면서 부정행위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EU의 종교선교위원회의 한 관리는 “케냐 2007 대선은 세계적으로 표준화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한 발 후퇴시킨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키바키 정부를 강력히 질타했다.
일단 유럽 외교부의 공식적인 행보는 키바키와 오딩가 사이에 들어가 이들을 화해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19세기 케냐를 지배했던 영국은 고든 브라운 총리가 직접 케냐를 방문해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실제로 고든 브라운 총리는 인터뷰에서 ‘중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평화적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키바키 정부는 유럽과 미국의 이 같은 외교적 행보에 미지근한 반응을 나타냈다. 간단히 말해서 좋지도 싫지도 않는 표정인 것이다. 케냐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번 사태가 호전될 때까지 정부는 기다릴 것이지만, 현재의 상황이 왜 이렇게 나쁘게 나타나야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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