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땅에 복음 전하리라!
20여년전 심양(봉천)을 거쳐 연변에 다녀 온적이 있다.
피폐해져가던 중국이 경제교류의 문을 열고, 세계를 향하여 몸짖하던
당시 한국과의 국교를 맺고 중국이 용트림하던 과도기에 조선족들이
엄청난 고리채에 시달리던때, 조선족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협동조합을
가르쳐주고 협동조합(중국에서는 신용호조라함) 설립을 하기 위하여
중국연변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7명의 설립단을 구성하고 1달 동안 연변에 머물면서
그들에게 신용협동조합을 교육하고, 현지 조선족들에게 방문하여
설명하면서 모두가 잘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일생에 뜻있는 일을 하고 돌아온적이 있다.
우리 일행은 짬을 내여 도문을 향하여 두만강변에서 엎어지면 코가다을
뜻한 단 오분이면 갈수 있는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갈수 없는 한민족의
한을 다시 한번 느끼며 쓸쓸한 발길을 돌렸다.
나는 단숨에 갈수 있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 했다.
하나님 언젠가는 저를 북한 땅에 보내주세요. 한손에 복음들고, 한손에는
협동조합을 들고 저들을 구원하러 가겠아오니 저를 보내 주세요.
서원한지 벌써 20여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한시도 나의 서원의 기도를 잊은적이 없다.
광야의 소리 카페를 개설하면서 제일먼저 생각 난것이 북한선교다.
북한정권을 만 천하에 고발하고, 북한의 문화를 소개하고, 생지옥의 땅에서
고난 받을 동포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다면 나는 가리라는
심정으로 카페를 통하여 북한 동포들의 한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산중에 명산 백두산(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함)에 올라
저편에 있는 북한 땅, 백두산을 바라 볼때, 중국에서 오르는 백두산 보다는
북한에서 오르는 백두산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현지 인들의 말을 듣고
중국땅에서 올라가야만 하는 이 한민족의 비극을 다시 한번 느끼며
백두산 꼭대기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를 했다.
저 암흑의 땅, 생지옥 같은 캄캄한 땅에 보내달라고 기도를 했다.
웅장한 천지폭포 또는 비룡폭포(중국에서는 장백폭포라 함)를 뒤로하고
용정(일송정 가곡의 현장)을 향했다.
용정 중학교에서 윤동주 시비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얼을 느끼며
용문교를 밟으며 일송정에 올랐다.
일송정(한그루의 소나무)을 올라 일송정을 찾아 보았지만
일송정은 없어지고
일송정이 있던 자리는 정자만이 쓸쓸히 용정시가지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동안 일정을 마치고 나는 다시 두만강 변을 찾았다.
남한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마다 북한의 선전 문구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고,
두만강변에 "동무들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다시 한번 나는 그곳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를 하는데 중국군인들이
접근을 하지 말라고 제재를 한다.
가는 곳마다 우리의 역사가 배여 있는 필경은 그곳이
한국의 땅임을 한 눈에 알수가 있었다.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기도 했다. 하나님 이곳은 분명히
중국이 점령하고 있지만 우리 조선의 땅이 아닙니까?
이 땅을 다시 돌려 주시옵소서! 옛 고구려의 땅임을
모든 유적지 들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민족을 용서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 처럼 이 땅을
다시 찾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했다.
우리의 땅의 보고(寶庫)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있는 곳,
아름다운 백두산을 다시 찾고
선구자들이 말달리던 드넓은 광야의 땅
용정, 옛 고구려의 땅 그 곳에 하나님의 복음
구원의 소리가 울려퍼지게 하옵소서!
나는 갈것이다. 북한이 열리는 날, 나는 가리라!
이 것이 나의 마지막 소명의 부름이다.
나이 많아 기력이 쇄진하여 갈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갈 것이다.
한손에 복음들고, 한손에 협동조합, 모두가 사는 방법을 들고
하나님과의 마지막 나의 약속을 지킬것이다.
목회자의 길이 두렵고 떨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던 내가 십여년의
고난 끝에 주님의 코뚜레에 매여 곱비를 웅켜 잡으신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면서 더 이상 하나님을 근심 하시지 않케
종의 길을 떠나지 않으리라!
지금 광야의 생활이 모두가 하나님의 훈련의 과정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땅 파서 야생화를 재배 관리하고, 모든 물이 얼어 붙어
그것을 녹이며 몇날을 보내고,
눈이 오면 산성을 올라오는 빙판 언덕길에 흙을 뿌려가며,
닭도 키우고, 오리도 키우고,
칠면조, 개들도 키우며, 색소폰을 배우고, 1.5km떨어진 이 웃들과의 만남,
이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할수 있을 것 같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된 삶이라면 어디든 갈수 있을 것같다.
북한이 열리는 그날에 주여! 나를 보내소서! 아멘
-주후 이천십일년 일월이십일일 오후 여덟시 이십오분-
광야에서----- 광야의 소리
(20여년전에 기억을 더듬으며 쓴 글이라 틀린점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틀린점이 있으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두만강 변 현수막(동무들을 환영한다는 현수막 문구)

백두산 올라가는 입구(장백산)
여서부터는 택시(우리나라 갤로퍼)를 타고 백두산 정상까지 오름

백두산 정상(장백산) 할레루야! 를 외치다. 중국군인들의 제재가 심하다.

조선족 주민들에게 협동조합 홍보 교육

심양공항(봉천 이라는 지명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고구려의 땅 봉천)

일송정(지금은 정자만이 쓸쓸히 용정시을 바라보고 있다)

도문에서 바라본 북한 땅, 엎어지면 코다을 듯한 암흑의 땅(걸어서 갈수만 있다면)

백두산 정상에서

연변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사무실 앞에서 현지인들과 기념 사진

백두산 정상에서 "만세 삼창" 중국군인들의 제재가 심하다.

용정 중학교에 세워진 윤동주 시인의 시비 앞에서

일송정 가곡에 나오는 용문교

자전차에 우리 자동차 처럼 중국에는 자전차 넘버가 있음(앞에 붙은 네모진 흰 판)

백두산(장백산)오르기전 천지 호텔

한국의 이발소라 할수 있습(북한에서 파견한 선전용 북한 아가씨)

연변의 협동조합 현지 직원

두만강 변

텐안문(천안문)광장

백두산(장백산) 정상에서 할레루야! 소리침 중국군인들의 제재가 심함.

장백폭포(천지폭포, 비룡폭포) 백두산에서 도보로 하산 하다.

주님이곳에